1977년 봄, 도널드 크누스는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개정판의 교정쇄를 받아 들고 실망했다. 출판사가 활판 조판을 사진 식자로 바꾸었고, 한때 새겨 넣은 듯하던 수식은 이제 복사물처럼 보였다. 그는 항의 편지를 쓰지 않았다. 여섯 달이면 해결하리라 어림잡고, 하던 연구를 밀어둔 채 자신만의 조판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일은 십 년 가까이 걸렸다. 오늘날 우리가 치는 LaTeX은 레슬리 램포트가 나중에 베푼 친절——크누스가 만들어 TeX이라 이름 붙인 기계 위에 얹은, 다루기 쉬운 매크로의 층이다.
이 이야기는 멘토인 David Turnbull이 Zoom 정기 미팅에서 들려주었다. 그는 크누스의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다. 같은 대화에서 그가 아끼는 편집기 둘도 보여 주었다. 쓰기와 렌더링을 하나의 살아 있는 화면으로 접어 넣는 Typst, 그리고 생각을 그 생각을 불러일으킨 페이지의 바로 그 자리에 꽂아 두게 하는 LiquidText. 그날 오후에는 몰랐지만, 그는 한 호흡에 독서 목록과 설계 지시서를 동시에 건네준 것이었다.
크누스의 이야기에서 내게 남은 것은 영웅적인 십 년이 아니다. 그 시작에 있던 거절이다. 페이지는 틀렸는데, 손을 뻗어 바로잡을 방법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뻗는 일」 자체를 만들었다. 검사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출력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십 년이 지나, 나는 AI 에이전트와 논문을 쓴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옷을 갈아입고 조용히 돌아왔다.
에이전트는 나보다 LaTeX을 잘 쓴다. 그것이 문제였던 적은 없다. Claude에게 한 단락을 조여 달라고 하면 더 조여진 단락이 돌아온다. 에이전트가 줄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위치와 증거다. 위치란 어느 문장, 어느 페이지, 어느 파일인가 하는 것. 에이전트는 눈먼 채로 고친다. 당신이 읽고 있는 렌더링된 페이지를 그는 보지 못한다. 증거란 고친 뒤에 정확히 무엇이 바뀌었는가 하는 것. 물으면 답은 돌아오지만, 그 답은 증언이다. 모델이 말하는 자기 편집의 서술은 의도에 대한 기억이지, diff가 아니다.
나쁜 출력에 대한 크누스의 답은, 페이지 위 모든 자국이 그가 직접 쓴 명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MagicTeX을 만들며 우리의 답은 그 거울상이었다. 에이전트가 남기는 모든 자국은, 인간이 소유한 기록으로 앞을 향해 새겨져야 한다.
편집기는 이렇게 움직인다. 지도교수가 출력물을 읽듯 당신은 렌더링된 PDF를 읽고, 페이지
자체에 표시를 남긴다. 한 구절을 골라 「무엇에 비해 크다는 것인가?」라고 쓴다. 에이전트가
받는 것은 분위기가 아니라 위치가 달린 지시다——페이지, 인용 구절, 소스의 파일과 줄,
당신의 요청. 에이전트는 정확히 그 자리를 고친다. 그리고 논문이 다시 컴파일되는 순간,
새 상태는 숨겨진 git ref로 스냅숏된다. 당신의 브랜치도 git log도 건드리지 않는, 작업
공간이 당신을 위해 적어 두는 평행 장부다. 컴파일마다 체크포인트가 하나. 체크포인트마다
diff가 있다. 어떤 파일이든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Typst는 창을 가르쳐 주었고,
LiquidText는 여백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git이 조용히 기억을 맡는다.
이 장부가 있기에 자율에 너그러울 수 있다. MagicTeX에는 /ultra-agents라는 모드가 있다.
리뷰어 에이전트가 논문을 비평하고, 자기 제안을 스스로 수락하고, 고친다. 몇 라운드든,
사이에 사람의 승인 없이. 이렇게 말하면 무모하게 들린다. 그런데 성립하는 이유는 단
하나——장부를 앞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각 라운드는 평범하고 되돌릴 수 있는 체크포인트로
내려앉는다. 먼지가 가라앉으면 당신은 인질이 아니라 심판으로서 역사를 읽는다. 당신보다
빠른 것에게 펜을 넘겨도 된다. 페이지와 여백과 역사를 손에서 놓지 않는 한.
크누스는 이 사회적 계약을 반대편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책에서 오류를 찾은 사람에게 2.56달러짜리 수표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16진법의 1달러. 받은 사람 대부분은 현금으로 바꾸는 대신 액자에 넣어 건다. 그것이 바로 요점을 증명한다. 돈은 애초에 보상이 아니었다. 보상은 「오류는 여기서 찾아지고, 찾은 사람은 존중받는다」고 말하는 시스템에 속해 있다는 것. 감사 흔적이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의심이 아니라, 교정을 향한 환대다.
1977년의 교훈이 「도구를 불신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누스는 타자기로 후퇴하지 않았다. 더 나은 기계를 만들었고, 거기에 정오표 현상금까지 그 문화에 새겨 넣었다. 교훈은 이것이다. 위임과 통제는 반의어가 아니다——지금껏 만난 가장 빠른 협업자를 껴안으면서도, 여전히 정중하게 증거를 요구할 수 있다.
그것이 MagicTeX의 생각 전부이고, 그 시작은 Zoom에서 들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당신은 페이지에 표시를 남긴다. 에이전트는 소스를 고친다. 그리고 git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타이핑한 것이 누구든, 무엇이든.